19/03/30 SAT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랑 같이 살았다. 다 감사하고 키워주신 은혜가 있으나 그 중에서도 단연 으뜸은 할머니이다. 비록 내가 말을 잘 안 들어서 속을 썩혀드린 적은 여럿 있어서 그 때마다 독설을 많이 듣기는 했지만 약이 되는 말씀을 해주신 것이기에 기분이 나쁘거나, 한 번도 서운하다고 생각했던 적은 없었다.

 

항상 감사했고, 고마웠던 이유는 그리고 지금도 고마운 이유는 어렸을 때 사실 경제 여건이 많이 여의치 않았다. 그러나 할머니는 손자인 나를 굶기지 않고 아침, 점심, 저녁 삼시 세 끼 차려주셨다. 반찬이 김치랑 김 밖에 없어도, 간장에 김만 먹는 상황이여도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말 의미 있었다.

 

비록 엄마가 안 계시고, 조금 가난하게 자랐더라도 할머니 할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예의나 행실에 대해서 만큼은 요즘 20대들이 부모님 세대에게 배운 관념 방식이 아니라, 부모님 세대가 조부모 세대에게 배우는 예절 교육이나 관념 방식으로 나는 자랐기 때문에 조금은 또래들과 생각하는 방식이 다른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어쨌든 항상 할머니가 나한테 해주셨던 이야기는 다른 사람 이용해먹지 말고, 성실하게, 사람 도리 못하는 짓 하지 말고, 욕심 부리지 말고, 사람 구실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회사는 힘들다고 네 마음대로 나오지 말아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였다.

 

좋은 이야기도, 조금은 걸러 들어야 하는 이야기도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본질적인 의미는 착하게,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비록 지금 할머니가 연세가 80이 넘어가시고 가진건 많이 없으실 지라도 키워주신 은혜나 잘 가르쳐 준 보은 같은 건 잘 간직하고 항상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거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그렇게 할머니랑 사이가 안좋기는 하셨지만, 치매에 걸리셨더라도 나한테 해줬던 말이 할머니 잘 챙기라고 했던 말씀이 있었다. 할아버지에게 크게 잘 해드리지는 못했다. 암 수술을 받으시고 급격하게 건강이 악화되고 치매까지 왔을 때 사실 관심 있게 기울여 보지 못했다. 그냥 가끔 고향 내려가면 목욕탕 모시고 가서 목욕시켜 드리고 옷 갈아입히고 그 정도.

 

작년 초에 돌아가셨을 때, 그냥 초등학교 다닐 때 자전거로 등하교 태워주셨던 그 기억이 갑자기 떠올라서 하염 없이 눈물이 나왔다. "OO이 또 할아버지 선글라스 쓰고 자전거 타고 오셨네.","대박 멋있다."어린 나이에 나는 할아버지가 데리러 와주시면 내색은 안했으나(?) 7살, 8살 때 나는 조금 X 팔렸었던 것 같다. 지금은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할아버지 나 그냥 걸어올테니까 오지 말아요! 친구들이랑 같이 걸어오고 싶어."

"알았다~"

 

또 데리러 오시고

 

아무리 미웠더라도, 더 잘해드리지 못한게 한 없이 죄송스러울 뿐이었다.

 

여하튼 뭐, 할머니가 참 요즘은 많이 기뻐하신다. 회사 중도에 포기 않고 성실하게 잘 다니면서 생각 깊게 행동하고 그런게 맘에 든다고

 

고등학교 때 큰 이유가 없이 학교가 너무 다니기 싫어서 전교 1등하면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된다고 가족들과 협의해서 하고 나서 학교를 뛰쳐나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만약이라는건 있을 수 없지만, 27살의 내가 16~17살 때의 나로 돌아갈 수 있었다면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았을 거다.

 

첫번째는 어리석은 고집이었기에, 두 번째는 가족들의 마음에 속을 썩히는 일이었다는 사실을 너무 뒤늦게 깨달아 버린 듯.

 

최대한 가족들한테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깊게 든다. 그냥 은혜를 받았으니까 잘해야한다 이런 인과 관계가 성립되는게 아니다. 마음에서 시키니까, 그냥 그렇게 하고 싶으니까 쪽이 더 가깝다.

 

중간/기말 등 바쁜 시즌이 지나가면 본격적으로 가족들 화합을 위해서 친척 분들에게 인사라도 드리러 가고 시간을 조금 투자해보고 싶다. 그리고 아울러 멈췄던 대인관계에 대해서 조금은 유동적으로 움직여볼까 한다. 7년 전에 학교 다녔을 때 친했었던 형도 근 2년만에 연락을 드렸는데 되게 서로 반가워하고 옛날 얘기도 많이 했다. "야 OO 태국 여자랑 결혼했어", "헐 미X 대박." 전화 상이지만 장기간 여러 얘기가 나눠졌다. 그 형은 지금 여수 쪽에 정유회사 쪽 다니고 있는데 지금의 나는 그냥 여러 사람을 만나고 싶다. 지금은 물론 바빠서 조금 한 두달 이후의 일이겠지만. 올해는 내가 알았던, 친한 사람들을 다시 연락을 복원하고 기존에 내실을 잘 다지는 한 해로 내년에는 목표가 달성되면, 새로운 사람을 조금 먼저 다가가서 사귀어보는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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